경제 기사의 ‘따옴표 저널리즘’ 이대로 괜찮을까 [미디어 리터러시]

경제 기사의 ‘따옴표 저널리즘’ 이대로 괜찮을까 [미디어 리터러시]

ai 투자 : 언론은 사실(fact)을 옮긴다. 그런데 가장 쉽게 사실을 적시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유명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의 내용이 진실인지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유명인이 그러한 말을 한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기사는 쓰기도 쉽지만,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많은 비판 속에서도 ‘따옴표 저널리즘’이 지속되는 이유다.

주식 : 2월23일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윤 정부, 부자감세 한 적 없다”라는 발언을 했다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물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경제부총리가 한 발언은 뉴스 가치가 있다. 다만 단순히 최상목 부총리의 말을 전하는 기사 외에 최 부총리의 말에 대한 해설기사가 필요해 보인다. 최 부총리가 한 말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해 보인다. 주식양도차익 과세 기준 완화, 법인세 감세 등을 고려하면 윤석열 정부가 부자감세를 한 적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런 감세가 내수와 투자를 촉진했다는 근거는 사실상 없다.

또한 같은 날 대정부질문을 전하는 기사 중에는 “작년 1.4% 성장, 나름대로 선방한 것”이라고 주장한 한덕수 총리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도 있다. 기사를 보면 한 총리는 “선진그룹에 속한 국가 중 상당히 높게 성장한 것”이라고 한다. 최 부총리도 “대외 여건을 말하면 핑계를 댄다고 하겠지만, 글로벌 경제가 사상 유례없는 그런 것(어려움)이 왔다”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 1.4%는 OECD 국가 평균 경제성장률(1.7%)은 물론이고 대표적 저성장 국가인 일본 경제성장률(1.7%)보다도 낮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OECD 국가 평균이나 일본보다 낮은 적은 최근 50년 동안 두 번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1980년이다. 쿠데타 직후 ‘서울의 봄’ 때였다. 그리고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렇게 두 번뿐이었다. 쿠데타도 없고 외환위기도 아닌 상태에서 일본과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을 하회한 것은 최근 50년 만에 처음 겪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2023년에 글로벌 경제가 사상 유례없는 어려움에 처했다는 최 부총리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팩트일 순 있어도 진실은 아닌 말들

문제는 한덕수 총리가 한국 경제성장률이 선진국 중에서는 “상당히 높게 성장”했다고 주장하고, 최상목 부총리는 글로벌 경제가 “사상 유례없는” 어려움이 왔다고 거짓말을 해도 이를 검증하지 않고 기사 제목에 그대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따옴표 저널리즘’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해도 언론들이 검증 없이 자신의 말을 전한다는 점을 잘 알고 이를 활용했다.

최악의 ‘따옴표 저널리즘’은 말의 일부만 따와서 본인이 한 말의 취지조차 왜곡하는 것이다. 최상목 부총리는 지난 1월21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서 “상속세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가 왜곡된다는 측면도 있는 것이고요, 또 한편에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양쪽 의견을 중립적으로 말했지만, 〈조선일보〉는 마치 최 부총리가 상속세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 것처럼 기사 제목(최상목 “높은 상속세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 왜곡”)을 썼다. 실제로 최 부총리와 인터뷰를 진행한 KBS는 “최상목… 상속세 개편은 신중하게 추진”이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다. 따옴표 안의 말은 팩트일 수 있어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기자명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다른기사 보기 [email protected]#따옴표 저널리즘#최상목 경제부총리#한덕수 국무총리#경제성장률#부자 감세#상속세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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