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ed 尹에게 주어질 ‘원 라스트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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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in THE PR]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가 드러낸 것들

재원 : 더피알=김경탁 기자 | 국가·정권 차원에서 꼭 이루고자하는 중요 아젠다가 있다. 성공 혹은 목표 달성을 위해 구성원들 모두가 각자 나름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이지만 활동들은 말 그대로 ‘각자 나름’일뿐 서로 소통은 되지 않고 정확한 정보 공유는 이뤄지지 않는다.

주식 : 아젠다 전반을 조율해야할 컨트롤타워에 전체 방향과 현재 상황을 파악할 ‘전문성’이 없거나 혹은 사적이익과 관계에 흔들리지 않게 해줄 ‘소명의식’이 부족한지 의심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어쩌면 컨트롤타워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상황과 문제를 제대로 파악·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와 이 전문가들에게 마이크를 내밀어야할 언론조차 두려움에 직언을 하지 못하거나 용기를 낸 직언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더라도 반대세력 혹은 소외집단의 트집잡기 쯤으로 치부되며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실패를 책임질 희생양을 찾는 분위기 속에 총체적 문제점에 대해 냉철한 원인 파악은 이뤄지지 않는다. ‘언로’가 막힌 상황에 숨어서 수군대며 터져 나오는 소리에 대한 공론장에서의 검증도 잘 이뤄지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 허위정보 혹은 오해가 사실처럼 확산된다.

11월에 있었던 ‘국가행정망 전산마비 사태’와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이렇게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 보면 10·11 보궐선거 참패에 윤석열 대통령이 “왜 진작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느냐”며 격노했다는 후일담과도 연결된다.

예상한 결과에도 충격이 컸던 이유

2030년 세계박람회(World Expo 2030)의 개최지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로 결정된 11월 29일. 1위와의 득표차가 예상외로 크다는 걸 빼고는 이미 예견됐던 결과라 담담하게 아침을 시작했지만 대한민국 부산의 마지막 피티 영상을 보고난 후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영상은 11년 전의 흘러간 유행가 강남스타일에 맞춰 연예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기호1번 선택’이란 메시지가 반복최면 같이 나오다 허무하게 끝난다. 명분과 비전의 전쟁터인 엑스포 유치 대결의 마지막 PT에 아무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 대체 어느 회사에서 얼마에 용역을 따서 최종 PT 영상을 저리 만들었나 궁금한 마음이 들다가 문득, ‘영상을 만든 회사가 뭔 죄가 있나’ 싶은 회의감이 깊게 밀려들었다. 광고·디자인 분야 종사자들이 늘상 하던 ‘업계’ 이야기가 떠올라서다.

아무리 기막히고 경천동지할 참신한 크리에이티비티를 도출해냈어도 클라이언트(발주처)의 결정권자가 오케이하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고, 아무리 구태의연한 시안이라도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면 그대로 집행되는 것이 이 바닥의 원리라는 것이다.

사정이 어찌했든, 여러 온라인 뉴스와 유튜브 영상의 댓글창과 각종 SNS(소셜미디어)에서는 최종 피티 영상에 대해 시대착오적이고 꼰대 취향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내가 한국대표로 투표를 했어도 PT영상을 본 후에는 사우디를 찍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최종 PT 영상을 제작한 회사가 어딘지 추적하는 이들이 등장했고, 여러 회사의 실명이 몇 개 구체적으로 거론됐으며, 확인·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근거해 섣부르고 설익은 보도가 일부 언론사에서 나오기도 했다.

특히 작년 11월 개찰한 ‘「2030부산세계박람회」 2023년 종합홍보용역’과 올해 6월 개찰한 ‘2023부산세계박람회 해외 유치홍보활동 종합용역(재공고)’을 수주한 대홍기획 그리고 올해 3월 개찰한 ‘2030부산세계박람회 23년도 유치활동 종합용역(2단계)’을 수주한 에델만코리아가용의선상(?)에 올라 매서운 눈초리를 받아야했다.

최종PT를 비롯해 유치활동 전반에 대한 더피알의 취재에 에델만 측은 자신들의 역할이 전체 용역에서 발생하는 세부 작업을 여러 수행회사에 분배하는 수준이었다며 최종PT영상을 만든 곳이 에델만이 아니라는 것 외에 다른 부분은 밝힐 수 없다며 곤혹스러워했다.

혼란의 와중에 유치위원회 홈페이지의 운영과 유지·보수를 맡았던 데이터쿡이라는 회사가 생뚱맞게 유탄을 맞기도 했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2008년도 박사논문에 사용된 온라인 설문조사 진행업체인 종합리서치회사 ㈜메트릭스가 수행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3년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 탈춤 동작 데이터’ 구축 사업에 컨소시엄 구성원으로 참여했다는 것이 의혹의 근거였다.

메트릭스는 국내 공공사회조사분야의 선두업체중 하나다. 여러 유력언론과 정기여론조사를 진행하는 이 회사가 15년 전에 수행한 300인 단위 소규모 조사를 의혹의 연결고리로 지목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이다. 이런 기준이라면연결되지 않을 업체나 개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소문에 시달린 탓인지 데이터쿡은 자사 홈페이지 첫 화면에 “(주)데이터쿡은 부산엑스포 PPT제작 및 홍보대행업체와 무관함을 안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대형 팝업을 띄우고 있다.

‘공개경쟁입찰’은 공개적이고 경쟁적일까?

“사우디가 최종 피티(프리젠테이션)를 그렇게(한국처럼) 했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마지막 피티 때문’이라는 비판은 맞지 않아요. 메가 이벤트는 현장의 PT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런 전제를 놓고 봐도 (전체 과정에서) 제일 안타운 게 최종 피티였습니다. 등장인물이나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투표국들에게 ‘비록 이번엔 부산을 찍지 않지만 부산에서 해볼 의미가 있구나’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어야했는데, 부산 그리고 한국의 인정엑스포 개최에 어떤 인류사적 의미가 있고 우리가 어떤 철학이나 신념으로 이걸 한다는 부분에 대한 강조를 전혀 담아내지 않았다는 게 제일 안타까웠습니다.”

–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에 참여했던 PR업체 관계자

최종PT 제작 회사는 국내 광고업계 빅4중 하나인 HS애드다. HS애드는 유치활동 종합용역 2단계 입찰에서에델만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참여해 총 146억여원의 사업중 약 53억원 어치가 배당된 4차와 5차(최종) PT영상제작과 리셉션 용역을 수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HS애드는 2022년 2월 개찰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BIE 총회 제2차 및 제3차 PT 제작 용역’을 수주했던 업체로, 2차 PT 당시 영상에 대해 “정부유치단의 기획으로 HS애드가 제작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최종 PT영상에 대한 실망감에 “차라리 이걸 틀걸 그랬다”는 평가를 받는 ‘169차 BIE 총회 영상2_카디_City of Wonder 부산’ 영상은 HS애드가 참여하기 한참 전인 2021년 12월 14일 사용됐고, 이듬해 1월 10일 위원회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됐다.

2021년 9월 30일 개찰이 이뤄진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BIE 총회 경쟁 PT 종합전략 수립 및 제1차 PT 제작 용역(긴급공고)’은 단독응찰로 인해 유찰됐다. 유찰된 입찰 내용은 공개되지 않지만 단독응찰 업체가 수의계약을 통해 수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1년 9개월 앞서 2020년 1월 20일자로 공고됐던 ‘2030 부산 세계박람회 마스터플랜 용역’ 역시 그해 3월 20일이 개찰 예정일로 공시됐고 사전 설명회까지개최됐지만 개찰이 이뤄졌는지조차 공시되지 않은 상태다.

‘카디_City of Wonder 부산’ 영상이 화제로 떠오른 후 이 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한 후일담에서 결과의 피드백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음해 경쟁 입찰에 팀이 선정되지 못했다며, 더 계속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잘된 일이지 싶다고 밝혔다.

1차 영상과 2~4차 영상들을 비교해보면 제작회사가 다른 탓인지 확실히 컨셉과 방향성의 차이가 있다. 1차가 ‘혼종성’이란 컨셉 안에서 낯설고 젊은 느낌을 강조했다면 2~4차는 이미 흥행 성과가 검증된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 혹은 취향이 엿보인다. 그런 의도와 취향이 집약된 결과물이 5차 최종 PT영상인 셈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 TV 광고들의 컨셉을 염두에 두고, 아무 메시지 없이 기호 1번과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5차 영상을 다시 살펴보면, 이미 표심을 확고히 잡은 지지층을 향해 약속과 다짐을 소구하는 컨셉이 드러난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엉뚱한 판세분석이 5차 영상 컨셉의 배경일 수 있다는 말이다.

설욕 기회는 남아있지만

충격의 날로부터 2주가 지나는 사이 여러 언론에서 관련 보도를 냈다. 사우디가 얼마나 진지하고 집요하게 상황을 주도했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결과에 분노했고, 유치위원회의 구성과 활동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떤 잘못된 정보가 보고됐는지고찰한 기사도 있었다.

최종결과에 대해 집권 후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전한 윤 대통령이 주요그룹 총수들을 대동하고 부산으로 가서 지역민심을 위로하는 행보를 보인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채로 국회 부산엑스포유치특위 회의를 개최한 더불어민주당은 ‘유치 실패의 진상규명 거부’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피알이 부산엑스포 유치 관련 취재 과정에 접촉한 PR업계 관계자들은 BIE실사단이 방한했던 4월에 이미 유치 PR 과정에 협력해야할 여러 부문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단절이 일어난 상태였고, 전체 프로젝트의 일관된 컨셉을 지켜내야 할 ‘콘트롤타워’의 부재를 느꼈다고 한다.

특히 PR학계 관계자들은 대형 에이전시 회사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시선에 대해 “전부 대행사들 책임으로 떠넘기기도 사실 어렵다”며 국가정보원의 역할 부족과 함께 그동안의 대형 국제이벤트 유치 활동에서 누적된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참담한 최종 결과가 나온 이후에서야 공론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세계박람회를 개최할 기회는 5년 뒤에도 다시 찾아오고 윤석열 정부의 임기는 이제 겨우 1년 7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설욕의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뜻이다.

전제조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 진작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보좌진을 질타하고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또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이유가 뭔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가능하다.

Tag#윤석열#박진영#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저작권자 © The PR 더피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김경탁삶 속의 말과 앎을 고찰해 맘을 들여다보려합니다다른기사 보기